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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일기 4화: 일본에서 방 구하기

메구로주민2018.12.11 12:06조회 641추천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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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건너가면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방을 구해본 건 2011년 서울대입구역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였는데, 당시에는 하루만에 계약을 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입주를 했던 터라 나이브하게 일본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신경을 오로지 일본어 공부에 쏟고 있다가 비자가 나온 후인 2017년 2월 말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

 

입학과 입사가 일제히 4월에 이뤄지는 일본에서는 자연스레 1~3월이 이사 극성수기가 되는데, 뭐든지 미리미리 하는 일본인들의 특성 상 이사 두달 전부터 사람들이 발품을 팔기 때문에 3월에 입주가 가능한 집은 1월부터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나 같은 지각생이 2월 말, 3월 초에 들어서서 부랴부랴 방을 알아 보면, 싸고 좋은 방은 당연히 이미 다 나가 있고, 오직 두 종류, 도심에서 매우 멀고 싼 방과 도심에서 가깝고 매우 비싼 방만이 남아 있다. 지하철로 한 시간 넘게 통근을 하면서 60만 원을 내고 사느냐, 도심에서 100만 원씩 내면서 사느냐인데, 그마저도 3월 중에 입주가 가능한 방은 많지 않았다.

 

며칠을 알아봐도 진척이 없자 이러다 집도 없는 채로 입사를 하겠다는 싸한 느낌이 들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들을 찾아갔다. 어느 아주머니는 나처럼 생각하다가 피를 본 한국인을 수도 없이 봤다면서 능숙한 영업수완을 보여주었다. 여러 부동산에서 최대한 많은 방을 보려 했으나 앞서 얘기한 두 종류뿐이었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로 치면 양재 정도에 해당하는 메구로에 방을 계약했다. 6평짜리 방에 월세가 96만 원이었다. 살면서 늦잠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외곽에 살 엄두가 나지 않아 비싼 돈을 주더라도 회사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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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천이 흐른다는 점에서 메구로는 양재와 비슷하다.

 

여기서 잠시 한국과 일본의 부동산 차이를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먼저 일본에서는 집주인과 연락할 일이 없다. 한국에서 원룸 계약은 '집주인 <> 중개사 <> 입주자'의 거래로 이루어지고 일단 입주를 하고 나면 입주자가 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집주인과 직접 연락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집주인과 중개회사 사이에 '관리회사'가 있다. 관리회사는 집주인으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고 세입자 모집, 시설 관리, 각종 CS를 전부 대신해주기 때문에 입주자는 집주인의 얼굴을 볼 일도, 연락처를 알 일도 없다.

 

다음으로, 방을 빌리는 건 정말 방만 빌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원룸에 책상이나 냉장고 같은 기본적인 가구와 가전이 딸려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입주자가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따라서 방을 뺄 때도 본인의 가구를 전부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대형폐기물 처리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닐뿐더러,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는 아예 '가전 리사이클법'으로 특수한 폐기 절차를 규정해두었고, 폐기를 안 한다고 하더라도 먼 타지로 이사를 하는 경우라면 운송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본에는 중고가구를 사고파는 리사이클샵이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절대 다수의 집이 열쇠를 쓴다. 당장 야후 부동산에서 도쿄 23구의 원룸을 검색해봐도 10만 개에 달하는 물건이 '카드키' 옵션으로 필터링을 거는 순간 2천 개로 줄어든다. 건물 현관키, 집키, 사무실키를 포함해 매일 네다섯 개의 키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다 보면 이 나라엔 부동산업자들과 열쇠업자들 간의 거대한 카르텔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밌는 점은, 요즘 한국에서 선물로 열쇠고리를 주면 욕을 먹겠지만, 일본에서는 웬만한 사람들이 열쇠를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보니 열쇠고리가 아직 선물로써 유효하다는 것이다.

 

2017년 3월 16일, 우여곡절 끝에 구한 메구로의 작은 방에 입주했다. 2주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고 나니 도쿄에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 메구로라고 대답하면 다들 '좋은 동네 사시네요!'라며 칭찬을 해준다. 사실 대답을 할 때마다 이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씁쓸해지지만, 4월만 되면 메구로강 앞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이 동네도 인연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입주 후 집 같은 집을 만들면서 남은 3월이 정신없이 지나갔고 4월이 찾아왔다. 그리고 4월 3일 월요일, 첫 통근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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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 되면 메구로천은 벚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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