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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일기 6화: 일본의 노동시장

메구로주민2019.01.23 04:29조회 595추천 5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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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의 HR사업 관련 자회사인 ABC스타일에서 나는 신사업담당, 구체적으로는 해외로부터 인재를 수급하는 사업을 맡았다. 일본 기업은 입사 후 최대 6개월까지 신입연수가 있지만, 회사에 인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님은 첫 2~3주 동안 본인이 참석하는 모든 회의에 나를 동석시키는 걸로 대부분의 연수를 대신했다. 때문에 일본이란 나라에서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업계 및 회사의 상황에 대해 상당 부분을 눈칫밥으로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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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회사와의 미팅에 동석하고 찍었던 사진(블러 처리). 회의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다.

 

일본의 노동시장은 서너 편을 연달아 쓸 수 있는 재밌는 주제지만 한국과의 큰 차이를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일본은 HR회사의 소개를 통한 인재 채용에 일반 회사들이 기꺼이 돈을 쓰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통상적으로 구직자 연봉의 30% (소비세를 포함할 경우 38%) 정도가 헤드헌팅 수수료로 형성되어 있다. 일본 전국의 세븐일레븐 점포가 2만 개 가량인데, 헤드헌팅 에이전시 사무실도 2만 개 쯤 된다. 연간 60만 명이 HR회사의 소개를 통해 취업/이직을 하고 있다. 월요일의 도쿄를 구상하게 된 것도 이때 받은 시장 규모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단, 다양한 고용/근무 형태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지 쉽게 해고가 이뤄진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 회사에서는 출향, 파견, 업무위탁 등을 포함하여 파트타임 근무, 탄력근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파견과 업무위탁이 비중이 꽤 높다. 한편, 정규직 근속연수 자체는 한국보다 높은 편으로, 시총 상위 100대 기업의 평균 근속연수가 16년 정도다(한국 9년). 부장~임원 급에 가기 전까지는 본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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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효율성 조사를 하면 대체로 일본이 10~20위권, 한국이 70~80위권을 기록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 세대가 체감할 수 있는 현저한 차이는 청년실업에서 나타난다. 일본의 2017년 기준 20~29세 실업자 수는 44만 명이고(실업률 4.3%), 한국이 40만 명이다(실업률 9.8%). 일본 인구가 한국의 2.4배인데 양국의 청년 실업자 수가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일본 최대의 HR회사인 리쿠르토社가 발표하는 대졸 구인배율은 1.9배로(중소기업 9.9배, 종업원 5천명 이상 기업 0.4배), 학생들과 얘기를 해보면 어느 정도 여유감을 가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소위 "취업 재수"나 취업을 위한 휴학, 졸업유예가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인들로부터 '요즘 일본에 일자리가 많다던데 현실은 어떻냐'라는 식의 질문을 가끔 받기도 하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 취업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부각시켜 보여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로 채용 시장이 한국보다 밝긴 하지만) 어느 정도 필터링이 필요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장밋빛으로만 포장하던 컨텐츠들이 한물 가고 보다 현실적인 관점의 컨텐츠가 많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노동시장이 아닌 채용 문화나 한국인의 일본 취업에 대해서는 향후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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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본 취업에 대한 비판적, 현실적 관점의 콘텐츠도 유튜브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입사 직후 속성으로 OJT를 받은 나는 ABC가 오래 전부터 CSR을 실시해온 필리핀에서 서비스직 노동력을 조달하고, 고급 사무직 인력은 한국에서 조달하는 스킴을 구상해 사장님과 함께 마닐라와 서울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준비운동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달려보기도 전에 갑자기 달려야 할 트랙이 바뀌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입사한 지 고작 두달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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