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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일기 9화: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

메구로주민2019.03.01 20:59조회 653추천 3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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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로 재직한 기간은 8개월이 조금 안 됐지만,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를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편에서는 단순히 업무에 있어서의 매너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일본의 독특한 사회적 프로토콜에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명함. 일본에서 정식 비즈니스 미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외국인과의 미팅이 아닌 이상 악수를 하는 일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대신 명함 교환에 대해 매우 복잡한 절차가 있는데, 예를 들어 두 회사 간의 3대3 미팅이라면 먼저 의자에 자리를 잡고 테이블 옆으로 나와 각각 일렬로 줄을 선다(테이블에서 명함을 건네는 건 결례이기 때문). 그러고는 축구경기 전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나가듯 상급자들부터 서로 명함을 교환하는데, 이때 본인의 명함을 명합지갑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전달하고, 상대방의 명함을 받을 때도 본인의 명함지갑 윗쪽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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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명함을 주고받은 뒤에 책상에 올려둔다.

 

명함을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면 받아둔 명함을 집어넣어서는 안 되고 맞은 편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순서에 따라 테이블 위에 각을 맞춰 올려놓는다. 사진처럼 대체로 최상급자의 명함은 명함지갑 위에 올려둔다. 이후 미팅이 끝날 때까지 이 배치를 유지한다. 명함을 정리해서 넣기 시작한다는 것은 미팅이 사실상 끝났다는 의미이다. 예절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명함도 명함이지만 명함지갑이 필수 아이템이다. 주위에 일본으로 취업한 사람이 있다면 선물로 명합지갑을 주자. 받는 사람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일본의 대표 명함앱을 운영하는 기업 Sansan이 만든 SNS Eight의 광고. Sansan은 작년에만 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음은 선물이다. 일본에서는 '오츄-겐(お中元, 7월 혹은 8월 15일. 한국에서는 백중이라고 부름)'과 '오세-보(お歳暮, 연말)'라는 시기에 상대방에게 선물을 보낸다. 여기까지는 추석과 설날에 친지 및 평소 신세를 진 분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서 거래처로부터 명절 선물을 받았다면 카톡으로 "아니 부장님! (이모티콘) 이런 걸 다 보내주시고... 다음 명절에는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인증샷)" 정도로 답장을 보내겠지만, 일본에서는 종이로 된 감사편지(お礼状[오레-죠-])를 우편으로 보낸다. 애초에 상대방의 선물에도 종이 편지가 동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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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매듭이 묶여 있거나 매듭 그림이 있는 포장지의 박스 안에 과자나 특산품 같은 것이 들어있다.

 

비서가 된 게 6월이었으니, 직무가 바뀐지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 오너 앞으로 도착하는 온갖 오츄-겐 선물을 맞이해야 했다. 덕분에 사무실에는 매일 군것질거리가 넘쳐났지만 이 시기에는 감사편지를 작성하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편지의 시작과 말미는 정해진 문구가 있어서, "입추라는 이름 뿐인 혹서의 나날에 변함 없이 잘 지내고 계십니까?"와 같은 예문들을 쓰면 되지만, 중간에는 받은 선물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게 예의라서 여기에 들어갈 문구를 생각해내는 게 고역이었다. 심지어 어떤 선물에는 붓펜으로 정성스레 쓴 3장 짜리 손편지가 들어 있어서 답을 하기가 정말 난감했었다. 이런 복잡함 때문에 일본에는 감사편지 간편제작 및 발송대행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있을 정도다. (사실 본인도 너무 귀찮고 잘 모르겠어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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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편지 스타트업(?) 시타타메. 편지지 색도 고를 수 있다. 월정액제로 가입하거나 1건당 500엔 정도를 내면 된다.

 

압권이라고 생각한 건 청접장이었다. 일본에서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은 반드시 참가여부를 회신해야 한다(참고로 일본의 결혼식은 한국보다 참석인원이 적은 대신 축의금이 기본 30만원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초청장에 회송용 엽서가 들어 있는데, 오너에게 온 결혼식 초대에 대해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듣고 '참가'에 체크한 뒤 우체국에 가려던 순간, 마침 사무실에 와 있던 부장에게 "ご[고] 지웠어?"라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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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참불 여부를 조사하기 때문에 식장에 가면 자리마다 이름표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회송용 엽서에는 <참가(ご出席)>와 <불참(ご欠席)>이 적혀 있고 둘 중 하나에 동그라미를 치고 나머지 하나를 지우게 되어 있다. 여기서 두 단어 앞에 붙은 ご[고]는, 3화에도 나왔지만 식사가 진지가 되는 것처럼 명사를 높이는 접두사라서 우리말로 하자면 <참가하심>, <불참하심>과 같은 어감을 만든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답을 보내는 데 <참가하심>이라고 보내면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니, '하심'에 해당하는 ご[고]를 두 줄로 지운 뒤 '기꺼이(慶んで)'라고 쓰고, 이어서 뒤에는 '시켜받겠습니다(させていただきます, 스스로를 가장 낮추는 표현)'라고 쓰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참가하심>을 <기꺼이 참가시켜받겠습니다>로 바꾼 셈이다. '시켜받겠습니다'를 쓸 때의 주의점은 끝에 구두점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 결혼이라는 경사에 종지부를 찍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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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청접장에 답장할 때 수정해야 하는 부분.

 

더불어 회송용 엽서 내에 본인 성명과 주소를 쓰면서 앞에 붙은 ご[고]도 지워야 하고, 답장의 수신인으로 <신랑/신부 이름 앞(OOO 行)>이라고 써있는 것도 신랑/신부를 높여야 하니 앞(行[유키])을 지우고 님(様[사마])으로 적어야 한다. 이렇게 예닐곱 군데를 손보고나서야 비로소 답장을 보낼 수 있다.

 

가끔은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볼 때마다 '이런 게 다 있구나' 하는 호기심과 신기함, 그리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지?' 하는 의문과 회의감이 들곤 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하의 의미를 포함해서 자국을 갈라파고스라고 칭할 때가 있는데,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 자생종이 생겨나듯 일본이 지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어 이같은 문화가 형성된 것 같다. 따라서 일본에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문화적 진입장벽은 보통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고 하겠다. 그나마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는 웬만하면 한국에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 주도(酒道)를 제외하고는 일본식 매너로 대응을 해도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하지 상대가 결례라고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제사가 간소화되고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장기적으로 격식을 덜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그 속도가 현저히 느릴 것 같다. 어쨌든 현재의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같은 매너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수 밖에 없다. 형식에 '매몰돼서' 마음을 전한다는 본래의 목적이 뒤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좋든 싫든 일본에서는 형식을 '통해서' 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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